상무님은 회식 자리에서 종종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버섯은 취업사기야."
저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 사원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시면 전 받아치곤 했습니다.
"에이, 상무님. 취업사기는 아니죠. 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건데."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직장생활은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생활이라, 혼자만 잘 한다고 되는 건 아닌데. 사회생활은 잘 하는 편이라 생각하나요?"
"네.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떡볶이집, 백화점, 공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외부 활동을 하며 사교적인 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제 스스로도 사회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은 잘 마셔요?"
"음."
"정확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대충."
"죄송합니다만, 술을 취할 때까지 마셔보질 않아 정확한 주량을 모르겠어요."
잠시 침묵.
"아,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그룹 공채로 최종 합격해 많은 임원들과 술 자리를 가진 첫 날, 술을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제게는 무척이나 힘든 자리였습니다. 술을 따라주시는 임원 앞에서 '제가 술을 못마셔서요' 라고는 차마 말 할 수 없었거든요. 술을 마시는 척 하며 고개를 돌려 술을 뱉어내고 술을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물컵에 뱉어내기, 물티슈에 뱉어내기, 티나지 않게 요령껏, 많은 술을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조금씩 마신 술을 제게 꽤나 큰 독이었습니다.
고량주라는 술이 꽤나 독한 술임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지하철에서 기대있다가 숨이 턱턱 막혀 너무 힘들어서 도와 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요청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후, 업무를 하며 가진 회식 자리에서 솔직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술을 전. 혀. 못마신다고 말이죠. 팀장님의 얼굴이 다소 근심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제가 술은 못하지만, 술 마신 사람 못지 않게 잘 놀고 잘 어울리니, 걱정마세요!"
꽤나 뻔뻔하고 꽤나 당돌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죠. 그리고 실제 술 마신 사람 못지 않게 노래방에서 방방 뛰며 노래를 부르고 술자리에서도 꽤나 수다스러웠습니다. 팀에 술을 못마신다고 오픈을 하고 나니, 송년회나 연말 회식 자리에서 타 팀에서 술을 권유하면 '버섯이 술을 못마셔서요. 그래도 늘 만취한 친구들보다 잘 놀아요.' 라며 팀원이 먼저 쉴드를 쳐주기도 했습니다.
13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며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신 건,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술을 못마시는 제 입장에선 '술은 쓰고, 몸에도 좋지 않고 왜 마시지?' 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짧은 시간에 최대한 빨리 가까워 질 수 있는 수단이 '술' 이라는 점에서는 인정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옆에서 보아온 결과가 말이죠.)
직장생활을 이제 막 시작는 사회 초년생 입장에서 술을 못마신다는 건 당시 너무나도 큰 약점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지금은 시대흐름이 바뀌어 전과는 또 다른 회식문화가 형성 되어 좋은 듯 합니다)
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술 잘 마셔요?' 라는 질문에 '술을 잘 마십니다' '술을 한잔도 마시지 못합니다' 라는 대답이 아닌, 애매모호하게 답을 하되 입사 후 그 질문에 대한 요점(사회성)을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면접관이 왜 술을 잘 마시냐는 질문을 하는지 그땐 몰랐습니다. '술' 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어 거짓말로라도 술 잘 마신다고 답해야 할 지, 술 못 마신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할 지 너무 어려웠어요.
"술 잘 마셔요?" 라는 질문이 술을 못마시는 저와 같은 이들에게 유쾌한 질문은 아닙니다. '일만 잘하면 되지. 술 잘 마시는지 왜 묻는거야?' 라는 생각이 앞서거든요.
10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질문의 뜻을 알겠더군요.
개인 업무 역량이 뛰어난 사람도 좋지만, 기존 팀원들과 잘 융화될 수 있는 사람인지 보기 위해 하는 질문이더라고요. 개인 역량 차이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다고 생각되면 이왕이면 좀 더 조화로워 보이는 사람, 예민한 사람보다는 좀 더 무뎌 보이는 사람을 택하게 되는거죠.
팀원들 평균 주량이 1병이라면, 평균 주량인 사람이 더 선호될 것이며 평균 주량이 2잔이라면, 평균 주량이 2잔인 사람이 더 선호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주량이란, 자신이 제어가 가능한 (취하지 않을 수 있는) 선을 말하는 것이구요.
각잡힌 군대문화가 익숙한 윗 세대들이 '술'을 중심으로 한 질문을 많이 하는 듯 합니다. 방향은 맞으나, 질문 형태가 잘못된 듯 합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긴 했죠)
'술'이 제게 최악의 질문이었기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예시로 든 것이며, 후배님들도 피하고 싶은 면접관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면접관 앞에서 당당해 지세요! 합격하게 된다면, 함께 일할 식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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