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항상 즐겁고, 재미있고, 내가 한 마디 하면 상대가 열 마디를 해 주니 대화하기 편하고. 서로가 한참 아웅다웅 사랑을 키워 나가는 연인 사이라면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리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연애의 첫걸음을 뗀 후배에겐 그게 쉽지 않나 봅니다.
"크크. 알아."
후배의 귀신이 순간 스윽 지나가는 것 같다는 표현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의외로 이런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연애 초반에 말이죠.
저와 남자친구의 연애 초반을 떠올려 보면 주로 남자친구가 이야기를 주도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과묵하여 말이 별로 없는 것 같았는데 말이죠. 의아해 하며 물다 보니 남자친구가 대답해 주더군요.
"너 앞이니까 그런거야. 너 앞에서만 그런거야. 나 말 잘 못해."
연애 초반엔 서로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개그 등과 같이 뭔가 다른 소재로 부터 이야깃거리를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통화를 하다 어느 순간 정적이 흐르면 그 정적이 싫어 제가 먼저 "노래 불러줘!" 혹은 "재밌는 이야기 해줘!" 라며 이것저것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남자친구에게 정답을 듣고서도 말이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너 앞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너 앞에서만 그런거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음. 냉장고에 잼 있어!"
"아...하...하...하... 울 집 냉장고엔 잼 없어! -_-"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애 초반,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재밌는 이야기 해달라(개그맨을 사귀는 것도 아니고), 노래 불러 달라(가수를 사귀는 것도 아니고)와 같은 요구가 남자친구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자친구는 저를 위해 만능엔터테이너가 되어 있어야 하는;;; 끄응- (미안해)
지금은 잘 압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즐거운 것은 즐겁게 해 주어서 즐거운 것이 아닌, 사랑하기에 함께 있어도 즐거운 것인데 말이죠.
"그러게. 거의 매일 통화하고 만나는데도 할 말이 많네. 통화 내용의 절반 이상은 지금 뭐해? 뭐하고 있었어? 밥 먹었어? 뭐 먹었어? 이건데 말야."
"근데 그게 재밌어?"
"아니. 꼭 재밌어야 웃어? 그냥 좋으니까 웃는거지."
전 더 크게 호응하고 웃어주면 되니까요. 사랑하니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먼저 크게 꺄르르 웃어주는 거죠. 웃다 보면 더 웃기고. 더 즐거워 지니 말입니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진 만큼 서로에 대한 추억이 많아 지니 자연히 외부의 이야깃거리를 찾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이야깃거리만으로도 할 말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연애 초기에는 조그만 정적 조차 견디기 힘들었는데,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안해 지니 그런 정적도 즐기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 상대 눈 빤히 쳐다보기(재미 붙이면 눈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손 잡고 만지작 거리기(상대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 하고픈 말을 쓰기도 했어요- 맞춰 보라는 식으로), 작게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기(상대가 자연스레 따라 흥얼거리게끔)와 같은 행동을 자연스레 하게 되더군요.
서로를 좋아하는 감정 그 이상으로 익숙함이 자리잡게 되면 굳이 어떤 말을 주고 받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말 대신, 눈으로, 손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혹, 전화 통화를 하다 정적이 흐르는 듯 하면 그래도 여운을 남기며 계속 웃다가 "왜 자꾸 웃어?" 라는 질문에 "그냥. 좋아서." 라는 말 한 마디만 해줘도 서로의 마음이 와닿으니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연애 초반, 어느 순간의 정적.
연애 초반이기에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정적이라 생각됩니다. 그 정적을 두려워할 필요도, 어색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상대가 먼저 만능 엔터테이너가 될 것을 기대하지 말고, 내가 때론 개그맨이 되기도 하고, 가수가 되기도 하며 먼저 웃음을 유도하는(먼저 정적을 깨는) 멋진 관객이 되어 꺄르르 웃어주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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