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했던 서울 남자들의 부드러움
대학생활을 위해 서울에 처음 왔을 때, 그때의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낯선 서울 땅에 홀로 일어선다는 것도 다소 두렵긴 했지만 그보다 “해낼 테다!” “난 할 수 있다” 라는 의지와 희망으로 가득 넘쳤었기 때문이죠. 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함께 일하던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와 “밥 먹었어?” 하며 생글생글 웃는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었죠.
왜냐구요?
좀처럼 무뚝뚝한 저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친척분들. 그리고 고향 남자친구들을 봐도 절대 저렇게 생글생글 웃으며 표준어를 구사하며 부드럽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본 적이 없거든요.
식사 시간에는 “밥 먹었나?”
잘 시간에는 “씻고 자라”
힘든 일을 마치고 나서는 “수고했다”
오랜 만에 만나서는 “잘 지내나?”
짧은 말에 모든 말이 다 담겨 있는, 네. 그렇게 경상도 말투에 익숙해져 있다가
“밥 먹었어?”
“잘자”
“수고했어”
“잘 지내지? 잘 지내?”
도대체 이 부드러운 말투 뭐죠? 부드러운 어투 자체가 아주 꿈뻑 넘어가겠더군요.
그야말로 뭔가 새로운 종족(응?)을 만난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도 이 황홀함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어쩌면 저, 낚인 건지도 모릅니다. 부드러운 서울말투에 그만… ㅎㅎ) 물론, 그 황홀함은 1년 정도가 지나니 사라지더군요. 익숙해져서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서울 남자들의 말투를 듣고 혼자 흐뭇해 하던 때를 생각하면 참 우습기도 하고 잊지 못할 추억인 듯 합니다. 덧붙임. 종종 이 때를 추억하며 이야기 하곤 합니다만 서울 친구들은 이해가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더군요. 풉. =.=
애교 제로인 나 – 하지만 그가 보기엔 애교덩어리?
“아- 배가 빵실빵실해.”
“아. 웃겨. 뭐라구? 배가 빵실빵실하다구?”
“왜?” “그게 뭐야. 으이그. 귀여워”
남자친구가 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콩깍지가 씌어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그리도 좋은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쿨럭;) 회사 직장 동료와 식사를 하고 나오다 또 한번의 이런 저의 표현에 배를 잡고 웃습니다.
보통 빵실빵실(방실방실)이라는 표현은 웃는 모양에 대한 것을 표현한 부사인데 배가 부르다는 표현을 이렇게 사용하니 새롭다고 말합니다. (빵실빵실이라는 표현을 배가 부르다고 표현 할 때 사용하지 않는 건가, 혹시 사투리인가 싶어 찾아봤는데 따로 검색되는 바가 없네요. 혹시 이에 대해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요. 궁금해요. ^^)
습관처럼 의성어, 의태어를 평소 말할 때 많이 사용하고 있었나 봅니다.
저~기 아래 지방에 있다 서울에 올라와 지낸 지 어느 덧, 8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상당히 어색해 합니다. 전 나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고향 친구들은 말하죠.
“야. 그거 우리 쪽 사투리 아니잖아.”
“서울말도 아닌 것 같은데?”
“대체 그기 어느 나라 말이고?”
“알 수가 없다”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줄곧 보내왔음에도 말투가 서울말투가 아닌 듯 합니다. 그렇다고 경상도 사투리도 아닌데 말이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난 도대체 어느 지역의 말을 쓰고 있는 걸까? 라고 묻자, 남자친구가 알려주었습니다. 평소에 차분하게 행동하고 이야기를 하거나 업무상의 이야기를 할 때는 표준어를 잘 구사하다가 맛있는 것을 발견했거나 선물을 받거나 싸워서 감정에 휩싸이면 (이게 포인트인 것인가!) 서울말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사투리도 아닌 것이 묘하게 바뀐다고 하더군요. 그런 것이었군요. =.=
더불어 ‘난 애교 따위 키우지 않는다’는 저의 말에, 애교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끔 조그만 것에도 크게 기뻐하며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 나오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이야기 해 주더군요. 네- 경상도 여자인데다 집안의 가장으로 장녀로 책임감 강하게 아들처럼 커 온지라, 애교와는 다소, 아니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그래도 이런 저를 아껴주는 남자친구를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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